탈무드에는 사물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사고법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있어 사고를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 한 예를 들어 소개하고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가령 "한 아이가 두개의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시다. 그 아이는 두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까? 아니면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합시다.
얼핏 어리석은 질문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몸이 하나이면 한 사람이다'라던가, '머리 하나당 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라던가 하는 어떤 원칙이 세워져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런 질문은 필요한 가설입니다.
유태교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후 한 달 째에 교회에 데려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때 머리가 둘이면 두번 축복을 받아야 할까요? 몸이 하나이므로 한번만 축복받으면 될까요? 또 기도할 때 주발같이 생긴 모자를 쓰는데 하나만 써도 될까요? 아니면 두개 모두 써야 할까요? 이런 많은 답변을 주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이 답이 명확합니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떨어뜨려 다른 머리도 같이 뜨겁다고 하면 한 사람이요, 다른 머리가 아무렇지 않고 보고만 있으면 두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필자는 유태인이 어떤 민족인가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응용합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유태인이 박해를 받거나 러시아에 있는 유태인이 박해를 받거나, 그 박해의 소식을 전해 듣고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른다면 그 사람은 유태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유태인이 아닙니다.
이처럼 응용범위가 넓은 예화는 탈무드에 많이 있습니다. 랍비들이 설교에 이 같은 많은 예화를 든 것은 설교는 잊기 쉬우나 이같은 예화나 우화는 오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탈무드 이야기는
사고의 원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어떠한 생각을 할 때엔
그 근본이 되어줄 원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전했는데요.
다만 원리라는 것은
그 환경과 시각에 따라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에 적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진리가 아닌 이상,
절대불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어찌 되었건 시간과 공간은
그 지배 하에 있는 것들을
변하게 만들기 마련이니까요.
오랜만에 탈무드 얘기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어려운 주제에 사실
어지럽기는 하나,
이런 게 탈무드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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