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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를 읽고

선과 악, 짝의 의미에 대해

by GrapherStory 2018. 8. 12.


대홍수 때 온갖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몰려왔습니다.

선(善)도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서 배에 오르려 했으나, 노아는 선(善)을 배에 오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짝 없이는 배에 오를 수 없어!"라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선(善)은 할 수 없이 숲으로 들어가 짝이 될 상대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악(惡)을 짝으로 삼아 배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후부터 선(善)이 있는 곳에 악(惡)이 있게 되었습니다.


탈무드_선과악


오늘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이야기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선과 악이 등장한 내용이기 때문이죠. 선이 있는 곳엔 항상 악이 있다. 반대로 악이 있는 곳엔 항상 선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번 이야기의 내용은 짧지만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과 악에 대해서, 짝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죠. 필자는 이 중에서도 짝의 의미에 대해 더욱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사족은 이것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짝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둘 또는 그 이상이 서로 어울려 한 벌이나 한 쌍을 이루는 것, 또는 그중의 하나입니다.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은데요. 선과 악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너무도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짝을 지을 수 있을까요? 선이 숲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짝으로 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과 완벽한 정반대의 속성으로 서로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호기심에 이끌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짝이 지어진 것보다도 이것이 유지가 되는 것인데요. 서로가 더 이상 어울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짝이 아니게 되니까요. 사람도 똑같은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 연인이 되기는 쉽습니다. 처음엔 호감과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니까요. 그러나 사랑의 유지는 다릅니다. 좋아하는 마음은 초반에 비해서 점점 사그라들게 되고, 동시에 상대방의 단점을 보게 되죠. 그러면서 결국 이별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나오는 영원한 사랑은 실존하지 않는 것일까요? 필자는 가능하다고 생각은 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사랑이라고 해서 항상 뜨거워야 된다는 전제가 없기 때문이죠. 사랑의 크기와 온도가 다를지라도 존재의 유무를 따진다면 영원한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사랑이 식었다고 해서 너무도 쉽게 상대방에게 이별을 고합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고 지쳐도 정말 사랑이 남아있다면 끝까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함께 이겨내어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적어도 상대와 함께 하기로 한 시작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는 것은 아닙니다. 대화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필요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생각대로만 되지 않고, 정말로 어렵습니다. 자기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매순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은 진짜 나의 것일까요? 이야기를 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고 복잡해져갑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세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면 분명하게 표현하세요. 혼자 전부 안고 결국 혼자서 결정을 내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마세요. 과정 속에서 순간순간 도와달라고 외치세요. 마음의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얕보지 마세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처를 자신이 줄 수 있다고 항상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다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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