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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를 읽고

병문안, 참된 선행에 대해서

by GrapherStory 2019. 10. 24.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문안을 가면 그 앓는 이는 60분의 1쯤 병이 회복됩니다.

그러나 60명이 병문안을 간다고 해서 그 병이 완쾌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는 것은 아름답고 갸륵한 일입니다.

병문안은 그 환자가 나으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지만 죽은 사람으로부터는 인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야말로 아름다운 행위인 것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맥락을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등장했습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씩 이런 경우가 있는데요.

마지막 문장인 '감사하다는 인사를 바라지 않는 행동이 아름다운 행동'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말해보겠습니다.

 

누구나 어릴 때 참된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참된 선행이란 보통 댓가를 바라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것이 전제인데요.

하지만 요즘들어 저는 그 생각이 조금 변했습니다.

선행의 댓가를 바라건 아니건, 마음에서 우러나서 한 행동이건 아니건, 일단 행했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말이죠.

 

아마 세상살이가 흉흉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물론 참된 선행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일단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역으로 어찌 되었건 착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칭찬을 해준다면 그 사람이 다음에 다시 선행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조금씩만 노력을 한다면 분명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야기에 간단한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1. 이야기에서는 60분의 1쯤이라는 표현으로 병문안을 수치화했는데요. 이건 사람에 따라 분명하게 다른 문제인데, 아마 대부분이 더 많은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혼자를 즐기는 저 역시도 누군가의 병문안은 큰 힘이 되거든요.

 

2. 갑자기 죽은 사람의 무덤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곤 감사 인사에 대해 나오고, 인사를 바라지 않는 행위가 아름다운 행위라고 하는데요. 그렇다면 병문안은 아름답지 않은 행위라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것도 관점의 차이긴한데, 저 같은 경우엔 '있을 때 잘하자'라는 마인드가 더 크기에 전 오히려 병문안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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