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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를 읽고

숫자, 개인과 집단의 사이

by GrapherStory 2019. 9. 2.

 

 

 만일 당신이 누구에게 말로써 상처를 입혔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다음에 내가 그 사람을 만나서 "지난번에 흥분해서 실례했습니다. 당신의 체면을 손상케 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하고 사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사과했는데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경우 유태인들은 열 사람의 이웃들에게 "내가 얼마 전에 아무개에게 이런 실례되는 말을 해서 그를 화나게 했습니다. 용서를 빌었지만 화를 풀지 않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용서해주시겠습니까?"하고 물어서 용서를 받으면 당신은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만일 모욕당한 사람이 이미 죽어서 사과할 길이 없으면 열 사람을 무덤에 모시고 가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무덤을 향해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 때 '10'이라는 숫자는 이유가 있는데요. 유태교의 교회는 기도할 때 10명 이상이 있어야 기도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9명 이하의 수는 개인이고 10명이 되어야 비로소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결정도 역시 10명 이상이 되어야 정치적인 결정과 마찬가지로 유효하다고 봅니다. 결혼식도 10명 이상이 모이지 않으면 열리지 못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말에 대한 주제인 줄 알았더니 마지막에 급커브 해서 숫자 10에 대한 의미로 바뀌었네요.

일단 10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유태인들에게 집단의 의사는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피해를 준 당사자가 용서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집단으로 인정하면 용서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고 하는데요.

물론 피해자가 용서를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정서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숫자 10은 개인과 집단을 가르는 의미라고 보여지는데요.

기도할 때나 어떠한 사항을 결정할 때나 결혼할 때에도 집단의 의미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만, 이것이 꼭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집단에 속해있는 것은 역시나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무리 속에서 자신의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줄이는 데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치의 흐름에서도 잘 파악할 수 있는데요.

개개인의 의사를 중요시하기도 했다가, 집단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도 했다가, 이것이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발전하였죠.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완전한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개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공산주의적 이념이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봐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아직까지 없는데요.

그래서 이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인간이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이야기에 재미로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1. 말로써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것은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항상 말조심합시다.

 

2. 당사자가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이웃에게 고해하여 대신 용서를 받는다니, 피해자만 불쌍할 뿐이네요.

 

3. 10명이 있어야만 기도가 성립된다는 것이 조금 의아한데요. 그렇다면 개개인의 기도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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