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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를 읽고

증오에 대한 탈무드 이야기

by GrapherStory 2021. 7. 29.

 

 

수없는 박해와 수난의 긴 역사를 지닌 유태인이지만, 증오를 이야기한 문헌이나 문학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증오를 오래 폼지 못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나치에 의해 6백 만의 유태인이 살해되었지만, 반독일 또는 독일인을 저주하는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태인은 아랍인과 전쟁 중에 있으나 아랍인을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 교도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으나 그들을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샤일록(베니스 상인의 등장인물 : 유태인 고리대금업자)이 증오에 불타서 "돈을 갚지 못하면 심장 부근의 살 한 파운드를 도려내겠다"는 이야기도 셰익스피어의 가공적인 글이지 현실의 유태인에게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베드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베드로가 어떠한 인물이냐 하는 것보다 바울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를 이야기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는 기독교이므로 기독교의 사고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지, 유태인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유태인이 교활하고, 잔인하고, 욕심많고, 부정직하고 증오심이 강하다면, 가톨릭 협회가 자금이 필요할 때 같은 기독교를 찾아가지 않고 왜 유태인을 찾아와 모금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태인이 가장 자선심이 많고, 정직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태인은 언제나 정이 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든지 유태인을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말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유태인은 누구에게도 돈을 떼여도, 절대 상대방을 벌하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을 벌하기보다는 돈을 되찾는데에 관심이 있습니다. 돈 대신에 자동차, 시계 등을 저당 잡지 사람의 심장이나 팔을 잡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쓸데없는 물건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서는 인간은 모두 한 가족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다가 오른손이 왼손을 잘랐다고 해서, 왼손이 보복으로 오른손을 자르는 것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탈무드 시대에는 대금업자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에는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유태인을 증오하며 멸시하고 있는가를 이해하고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을 경우, 돈이 확실하게 돌아올 것이 보증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탈무드에 따르면 아무리 담보물을 잡고 돈을 빌려 주었다고 해도, 그 사람의 물건이 둘 이상 있지 않으면, 회수 안 되는 돈 대신에, 그 물건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옷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옷이 한 벌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옷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접시를 담보로 했을 경우에도, 그것이 하나밖에 없다면 가질 수는 없습니다. 집을 담보로 했을 경우에도 채무자가 길거리에 쫓겨날 수밖에 없다면, 그 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일지라도 사치를 위한 물건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생존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하나밖에 없을 때에는 뺏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당나귀 한 마리가 그 집의 오직 하나인 수입원이라고 한다면, 그 당나귀를 뺏을 수 없습니다. 단 사용하지 않는 밤에는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또 옷을 담보했을 때, 이스라엘의 추운 밤에는 그 옷을 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은 찾지 못하고 담보로 잡은 사람이 가지고 가서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탈무드 이야기는

정말 굉장히 기네요.

 

내용의 제목은 증오인데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그냥 '유태인 짱'인데요.

 

사실 탈무드라는 것도

자신들의 역사 중 일부이니

스스로를 고평가 하는 것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현대 유대인(유태인)들의

위치와 행보를 고려하면

다소 찝찝해지긴 합니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성격이 바뀔 순 있지만요.

 

이제 유태인의 역사 중

가장 큰 사건이라 불리는

나치에 의한 탄압과

교육 목적의 탈무드로 인해,

 

우리나라의 대부분은

유대인의 모습을 떠올릴 때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요.

 

어떠한 것이라도 결국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기에

항상 필터를 활짝 열고

받아들이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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