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사람의 랍비들이 길을 가다가 악인의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그 악인들은, 사람의 뼈도 못 추릴 만큼 악독했고 잔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그만큼 잔인한 인간들은 없었습니다. 랍비 한 사람이 그 같은 악인이라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어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중에서 제일 존경받는 랍비 한 분이 말했습니다. "아니오. 유대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되오. 아무리 저런 악인들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런 기도를 해서는 안되오. 그들이 죽기보다는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야 합니다"
수인들이 벌 받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게 해서 선하게 만들지 않는 한 손해가 될 뿐입니다.
오늘 탈무드는 먼 옛날부터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죄와 죄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이거 정말 어렵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명언이 있죠? 하지만 저마다의 입장에서 이 명언은 자신에게 힘을 더해주기도 하고, 오히려 힘을 빼앗기도 합니다. 관점에 따라 죄인을 선도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옳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피해자 및 그 주위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죄질과 죄인의 평소 행실 및 범죄의 이유까지 더해진다면 아주 골치가 아파집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이치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면 좋을 텐데요. 그렇지 않기에 시대의 분위기 및 판단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기에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는데요. 최근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좋지 않은 소식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의 탈무드를 읽고 한 번쯤은 이 같은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야기에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1. 얼마나 잔인했기에 악독하고 잔인했다는 것을 이렇게나 강조했을까요? 상상하기도 싫어지네요.
2. 랍비들도 역시 사람입니다. 위기를 느끼자 악인들이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등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제일 존경받는 랍비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와중에도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는 바라는데요. 가장 이상적인 성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에는 항상 괴리가 있죠.
4. 수인이란 옥에 갇힌 사람을 말하는데요. 교도소가 우리의 세금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범죄자들을 회개시키고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들은 우리가 충족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5.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요?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새 사람이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만약 새 사람이 된다면, 이전에 자신의 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상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이러한 질문들은 앞으로도 인간 주도의 세상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6. 근데 악인들과 마주친 랍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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