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이야기, <두 개의 세계>의 경우를 함께 고려해보았을 때, 극장에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한쪽은 분명히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을 차지한다는 것은 거짓말쟁이에게도 이득을 주는 일이 되므로 사회정의의 원칙에 위배됩니다. 그러므로 재판소는 증거가 있을 때까지 그 물건을 맡아두어야 합니다.
거짓 맹세는 하나님의 십계명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만일 거짓 선서를 하면 39대의 채찍을 맞아야 합니다. 거짓 선서는 사람에게는 큰 수치인 것입니다. 탈무드에서조차도 극장에서 돌아온 두 사람이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선서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더 이상 탈무드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탈무드가 아무리 지면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긴 이야기를 한정된 지면에 쓰고 있으므로 헛되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논쟁은 자주 반복됩니다. 이런 예는 탈무드에서는 드문 예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두 개의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두 개의 이해해야 할 양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사족
1-1. 사실 극장의 이야기는 두 사람 모두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상영된 타임의 자리 주인이 실수로 놓고 갔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1-2. 거짓 선서는 그야말로 선서를 하는 사람의 양심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므로, 물리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1-3. 이해해야 할 양면 세계란 탈무드의 상식 세계와 그 밖의 세계를 말하는 듯합니다. 현대 사회는 조금 더 다각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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