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배 두 척이 짐을 가득 실은 채 정박해 있습니다. 한 척은 곧 출항하려 하고 있고, 또 한 척은 방금 입항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게 들어오는 배는 환영객이 거의 없으나 떠나는 배는 환송객이 많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그것은 매우 어리석은 관례입니다. 떠나가는 배의 미래는 알 수가 없습니다. 풍랑으로 침몰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성대히 환송하는 것일까요? 긴 항해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는 배야말로 커다란 기쁨이어서 성대한 환영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책임을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축복합니다. 그것은 마치 배가 항해에 나서는 것과 같습니다. 그 아이의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병으로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의 장래에 그는 흉악범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을 때, 그가 일생동안 한 일이 착실하다면, 그는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배와 같습니다. 그때야 말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축복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탈무드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인데요.
단순히 죽음이라기보다도
탄생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다른 잡설 없이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볼게요.
입항하는 배와 떠나려는 배,
두 척의 상황을 비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들어오는 배는 환영이 없으나
떠나는 배는 환송이 많은데,
이것은 어리석다고 합니다.
물론 떠나는 배의 미래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배는
마땅히 칭찬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한데요.
배는 집 앞 슈퍼를 가듯이
단거리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번 배를 타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의 이별은
필히 예약되어 있다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인연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이별의 아쉬움이 크기에
마지막까지 환송을 하는 거죠.
반대로 입항하는 경우에는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있겠지만,
임무를 하기 위해 떠나온
외부인들도 존재할 것입니다.
따라서 환송객의 수보다
환영객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거기다 과거엔 배의 도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기에
환영객이 적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인생에 비유했을 때는
조금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아이가 태어났다고 해서
탄생일이라는 이유로
그날 파티를 하진 않습니다.
아이와 산모의 건강관리 이후
생일이나 백일 축하를 하죠.
반대로 사람이 죽었을 땐
장례식을 치르게 됩니다.
당일 몇 시간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성대하게 며칠 동안
계속해서 진행이 되죠.
물론 그냥 어느 때든 똑같이
인생을 축복하면 좋겠지만,
어떻게 생각해본다면
죽은 이에게 축복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기 전 살아 있을 때
그 사람에게 수고했다며
즐거움과 축복을 주어야지,
죽고 난 이후 남은 사람끼리
그러는 게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인간에게 너무나도 큰 사건이기에
사람의 탄생과 죽음에 대해선
정말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데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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