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가 시장 속에서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여기 시장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기에 적당한 사람이 있소?"
그러나 시장 속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요. 그때 두 사람이 랍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그 랍비는 "이 사람들을 보시오, 이들이야 말로 선행을 한 사람들이요!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족한 사람들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까?"
그러자 그 두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어릿광대입니다. 쓸쓸한 사람에게 웃음을 주었고, 다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사한 어릿광대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사실 조금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요.. 단순하게 보자면 어릿광대라는 직업의 훌륭함을 알리기 위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광대라는 직업은 하찮게 여겨져 왔는데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망가뜨려도 상대방에게 웃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표면만 보고 광대들을 바보 취급을 하고 무시를 합니다. 나에게 웃음을 준다는 고마움을 모르고 말이죠. 이건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사람들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모습도 마다하지 않는 개그맨들을 높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에게 웃음을 주니 편안하고 만만하게 보는 경우가 많죠.
웃음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웃음으로 인해 치료가 불가능했던 병을 회복한다던가, 웃는 소리를 꾸준히 들은 식물이 더욱 잘자란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이러한 웃음을 타인에게 선사한다니 정말 멋진 일이지 않습니까? 비단 광대나 개그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나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셨다면 그분들에게 작은 고마움을 표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오늘의 이야기에 재미로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1. 영원한 생명의 임팩트가 너무 강했는지,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원한 생명이라는 속성을 언급하지 말고, 직업적인 이야기로만 채웠다면 더 담백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네요.
2.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기에 적당한 사람이란, 그만큼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겠죠?
3. 랍비의 말에 걸어나오는 어릿광대의 모습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선행을 이야기할 때 본인이 스스로 나서면 그 감동과 감회가 줄어들잖아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기에 적당한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슬그머니 랍비의 앞으로 나서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정말 웃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네요.
4. 3번을 반대로 생각해보면, 평소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천대받던 어릿광대들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았으면 저렇게 자신들을 알아달라고 스스로 나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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